소소하지만 확실한 정보

 

 

 

 

1174년.

 

천부적인 능력으로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를 비롯한

이슬람 세력들을 상당수 정복하는데 성공한

[살라흐 앗 딘]  [아이유브 제국] 

 

 

 

 

아랍 최대의 거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세력권 안에서 홀로 당당하게 서 있던

 

아랍 유일의 기독교 왕국인 [예루살렘 왕국] 

항상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지.

 

 

 

1177년  11월 25일.

 

살라딘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었지만

반면에 이를 대비해야할 [예루살렘 왕국] 

상황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해.

 

 

 

 

왜냐하면 어린나이에 [예루살렘 왕국] 

제 7대 국왕으로 즉위한 [보두앵 4세] 

 

유능했지만 나병에 결렸으며 후사도 없는 것도

모자라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국왕을 곁에서 지탱해 줘야할 예루살렘의

귀족들은 충성파와 강경파로 분열된채

 

두 파벌이 차기 왕위 계승자리를 두고 서로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거든.

 

 

 

이러한 소식은 이집트에서 한창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살라흐 앗 딘] 에게도 전해졌고

 

지금이 바로 [예루살렘 왕국] 을 정복할

절호의 기회임을 확신한 살라딘은

 

 

 

삼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고해.

 

 

 

 

그는 [예루살렘 왕국] 의 영토로 알려져 있는

[람라] [지라] [아르수프] 등을 침공하여

마구 약탈하기 시작했고

 

 

 

살라딘의 침공 소식을 접하게된 [보두앵 4세] 

신속하게 십자군을 편성하기 시작했어.

 

 

 

분열된 왕국의 수뇌부들은 이교도의 침공 앞에선

함께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음에도

 

당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기사 오백 명과 

보병 수천 명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전력

차이가 꽤 나던 상태였지만

 

 

 

 

살라딘의 군대가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는

첩보를 접하게 되면서 승산이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곧바로 십자군을 출병시켰지.

 

 

 

이 때, [보두앵 4세] 는 [예루살렘 왕국] 의 성 유물로

알려진 참 십자가(True Cross) 앞에 무릎을 꿇고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는데 그 경건한 모습을

목도한 십자군은 큰 용기를 얻었으며 군의 사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고해.

 

 

 

이 후, 십자군은 해안가를 따라 우회 진격하면서

살라딘의 본진으로 서서히 접근했는데

 

살라딘이 이 사실을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눈앞에 십자군이 포진한 상태였고
     

 

 

  

십자군의 선두에는 [보두앵 4세] 가 살라딘을

간단히 씹어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

 

 

 

 

십자군이 나타나자 살라딘은 크게 당황하여

대혼란에 빠졌다고 하는데

 

일단, 이렇게 빨리 [예루살렘 왕국] 이 대응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며

 

 

 

 

너무 방심했던 나머지 삼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넓게 분산시켜 놓았던 것도 모자라

 

이집트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휴식을 취하지

않아서 병사들과 말들이 매우 지쳐 있었고

 

그로 인해 살라딘의 주력 병력이었던 기병대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어.

 

 

 

결국, 양측의 전력이 서로 비등한 상태에서

[보두앵 4세] 가 이끄는

 

오백 명의 십자군 기사단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지도

못한 이슬람군의 중앙을 손쉽게 돌파해 버리자

 

 

 

 

살라딘의 군대는 순식간에 전열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전리품과 보급품들을 모조리

빼앗기게 되어버렸다고해.

 

 

 

 

살라딘은 이 전투에서 워낙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살라딘의 조카를 비롯하여 

주요 참모들이 전사하고 말았으며

 

살라딘의 본진을 구원하기 위해 접근하던 다른

이슬람 부대들도 각개격파 당하는 바람에 

 

 

 

 

살라딘이 이집트에서 이끌고 왔던 삼만 병력 중

이만 칠천 명이 전사하고 수천 명이 포로가

되거나 흩어져 버리고 말았지.

 

 

 

하지만 전력 차이가 컸었기 때문에 십자군 또한

흩어져 있던 살라딘 군대의 지원병력들을

하나 둘 격파하는 과정에서

 

천여 명이 전사하고 팔백명이 부상을 당하는

꽤 큰 피해를 입어야 했어.

 

 

 

 

이 전투에서 살라딘은 십자군의 집요한 추격을 

정말 간신히 따돌려 도망칠 수 있었으며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10일 만에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해.

 

 

 

 

살라딘은 불과 16살의 나이로 기사단의 선봉에

서서 싸워 승리한 [보두앵 4세] 

 

[예루살렘의 젊은 사자] 라고 부르며 그의 용맹함과

지혜로움을 칭찬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어.

 

 

 

 

[살라딘]  [보두앵 4세] 가 맞붙은

[몽기사르 전투] 이후.

 

살라딘은 워낙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한 동안

이집트에서 숨을 죽이고 살수 밖에 없었고

 

 

 

 

패배의 순간을 잊지 않고 더욱 무서운 기세로

내부의 적을 소탕하고 세력을 확장 하는데 

힘을 쏟았다고해.

 

그래서 큰 타격을 입었던 그의 세력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한 것도 모자라

더욱 강대한 세력을 이루었지.

 

 

 

 

1179년 4월 10일.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 에 심어둔 첩자로부터

[보두앵 4세] 가 십자군을 편성하여 

 

살라딘의 세력권인 시리아를 목표로 공세를

준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어.

 

예루설렘에서 출병한 십자군은 [골란 고원] 

통하여 시리아 방향으로 행군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살라딘은 부하였던 파루크 샤(Farrukh-Shah) 

천여 명의 정예기병을 시리아의 국경지대로

긴급 투입시켰다고해.

 

 

 

 

파루크의 기병대는 시리아 국경지대로 진입하던

행군중인 십자군을 기습공격 하였는데

 

때 마침, 십자군의 선두 대열에 [보두앵 4세]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던 덕분에

 

천여 명에 달하는 이슬람 기병대는 선두대열을 완전히

포위하여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지.

 

 

 

 

[보두앵 4세] 와 근위 기사단, 보병들이 힘겹게

포위공격을 막아서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곧 무너져 내릴게 뻔했고

 

 

 

 

후위 대열 또한 적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상태라

왕을 구출할 틈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보두앵 4세] 의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어.

 


 

 

 

 

그때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어.

 


 

 

적 기병대의 포위공격으로 궤멸직전에 있었던

선두 대열에 한 십자군 기사단 무리가

포위를 뚫고 들어온 거야.

 

 

 

 

그들의 정체는 국왕의 최측근 가신으로 알려져 있던

[험프리 2세] 와 [구호 기사단] 의 일부였다고해.

 

 

 

 

그러나, 그들은 [보두앵 4세] 를 탈출 시키기위해

소수의 인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온 거였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대열의 전열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

 

 

 

 

 

그러자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은 [험프리 2세] 는 

[보두앵 4세] 를 들쳐업어 탈출용 말에 태우는

그 짧은 순간 동안에

 

왕을 보호하고자 스스로가 왕의 방패가 되어

온 몸 수십군데를 적의 칼에 일방적으로

베이고 찔려야 했어.

 

 

 

 

 

[보두앵 4세] 는 기사들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에

포위망을 돌파하여 탈출할 수 있었지만

 

 

 

 

 

[험프리 2세] 와 선두 대열에 있던 기사들과 보병들

대부분이 국왕을 탈출 시키기위해 포위망을

돌파하던 중 전사하고 말았으며

 

[보두앵 4세] 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위하여 

전군 철수를 지시함으로써 십자군의 공세는

허무하게 좌절되고 말았지.

 

 

 

 

 

시리아 원정의 실패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보두앙 4세] 는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고해.

 

패배는 그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험프리 2세] 가 전사한 것 때문이었어.

 

 

 

 

 

 [험프리 2세] 가 누구냐 하면 선대 국왕이었던 

[보두앵 3세] 가 어린나이에 즉위할 때부터

 

곁에서 그를 보좌해왔던 십자군 기사이자

[토론] 지역의 영주였으며

 

 

 

 

 

선왕시절, [예루살렘 왕국] 이 이집트 원정을 진행할 때

중립관계였던 살라딘과도 친분을 맺어 서로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기도 했을 정도였고

 

 

 

 

 

그의 용맹과 전술적 능력은 당시 아랍인들조차 인정하여

[신이 무슬림을 벌하기 위해 내려주신 역병] 이라고

칭할 정도로 막강한 십자군 기사였어.

 

 

 

 

 

가뜩이나 왕위계승 문제로 걸핏하면 수뇌부가

분열되던 [예루살렘 왕국] 이었기에 

 

[험프리 2세] 같이 국왕의 곁을 보좌하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유능한 충신을 잃은 것은

정말 뼈 아픈 손실인 셈이었지.

 

 

 

 

 

이제, [예루살렘 왕국] 에서 [보두앵 4세] 와 함께

왕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할 수 있을 만한 

영향력 있는 충성파 귀족은

 

선왕 시절부터 왕을 보좌했던 [트리폴리] 

[레몽 3세]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영지인 [트리폴리] 를 지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국정에 간섭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해.

 

 

 

 

 

한때, 예루살렘 왕국은 충성파 와 강경파 로 나뉘어

팽팽한 대립구도를 이룸으로써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충성파의 주축이었던 자들이 사망하거나

정치적 문제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면서

 

 

 

 

 

문둥병으로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가고 있었던

[보두앵 4세] 는 홀로 외롭고 쓸쓸한 정치적

다툼을 이어 나가야 했지.

 

 

 

 

 

 

 

1179년 6월.

 

국왕의 곁에서 [예루살렘 왕국] 을 수호하기 위해

애써왔던 충성파 세력이 사실상 소멸하면서

 

홀로 힘든 싸움을 견뎌내고 있는 [보두앵 4세] 

지난 4월에 실패했던 시리아 원정을 한번 더

진행하기로 결정을 하게 돼.

 

 

 

 

 

가장 신임했던 충신, [험프리 2세] 개인적인

복수심도 있던 이번 [2차 시리아 원정] 

 

[레몽 3세]  [성전 기사단] 도 참가하여 국왕의

곁을 보좌하게 되었으며 동원된 십자군의 

전력 또한 이전과는 차원이 틀렸어.

 

 

 

 

 

시리아로 진군한 십자군은 이번에도 시리아

국경지대 쯤에서 살라딘의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투 과정에서 살라딘의 군대가 십자군의 공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기세가 오른 십자군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게 되면서

병력이 흩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분산된 십자군은 퇴각하던

살라딘의 군대를 너무 깊숙히 추격하고 있었고

 

 

 

 

 

결국, 매복중이던 살라딘의 군대에게 역습을

받게 되면서 대패를 겪게 되었다고해.

 

 

 

 

 

[보두앵 4세] 는 전투 도중 낙마를 하면서 거동조차

하지못할 정도로 몸상태가 악화되어 버렸으나

 

부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현장에서 퇴각할 수

있었을 정도로 심각한 패배를 당했으며

 

 

 

 

 

예루살렘 왕국의 주요 영주들을 포함하여 수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어.

 

 

 

 

 

이 패배는 [예루살렘 왕국] 에게 있어서 왕국의

존망이 걸릴 정도로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천만 다행이도 살라딘이 대부분의 포로들을 

풀어줌으로써 다시 십자군의 전력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는 있었지.

 

 

 

 

 

어찌됐든, 예루살렘 왕국의 수뇌부와 영주들이

모두 처형 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결국, 십자군의 두 번째 시리아 원정까지도

실패하는 것으로 마무리 돼었어.

 

 

 

 

 

 

 

1180년.

 

작년에 과감하게 진행했던 두 차례의 군사작전이

그야말로 대실패로 끝나게 되버림으로써

 

[보두앵 4세] 는 곧 있을 살라딘의 침공을 막아낼 

여력조차 부족한 현 상황을 타계하기위해

온갖 방법를 구상해야 했지만

 

 

 

 

 

천만 다행이도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살라딘의

영토가 심각한 기근이 들게 되면서 전쟁에

병력을 동원하기가 어려워졌기에

 

 

 

 

 

살라딘 측에서 먼저 [보두앵 4세] 측에게

휴전제의를 요청해왔고

 

서로가 아쉬울게 많았던 [보두앵 4세] 와 살라딘은

서둘러 2년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어.

 

 

 

 

이로써 [예루살렘 왕국] 은 위기의 순간을

휴전협정을 통해 일단은 넘길 수 있게

되기는 했었지만

 

 

 

 

 

이번에는 [보두앵 4세] 의 누이였던 시빌라 

예루살렘에서 어떠한 영향력도 없었던

프랑스 출신의 듣보잡 귀족이었던

 

[기 드 뤼지냥] 과 다짜고짜 혼인을 하겠다고

찾아와 난리치는 바람에

 

 

 

 

 

누이를 유럽의 대귀족과 정략결혼을 시켜 대규모

원조를 얻어낼 계획이었던 [보두앵 4세] 

큰 고민에 빠져야 했지.

 

 

 

 

 

시빌라는 키도 크고 잘생긴 [기 드 뤼지냥] 에게

홀딱 반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신랑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에

 

[보두앵 4세] 는 어쩔수 없이 두 사람에 혼인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해.

 

 

 

 

 

그리고 기에게 [야파]  [아스칼론] 의 영지와

함께 백작 작위를 수여함으로써

 

예루살렘 왕가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밑천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지.

 

 

 

 

 

 

1181년.

 

그 동안 전쟁 중이던 살라딘의 [아이유브 제국] 

[보두앵 4세]  [예루살렘 왕국] 이 2년 간의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되자

 

한 동안 중단되었던 대규모 상단이 다시 활기를

띄면서 양국을 왕래하기 시작했으며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위한 순례행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두 나라는 오랜만에

활기를 띄게 되었다고해.

 

 

 

 

 

하지만 그 와중에 [르도 드 샤티옹] 이 자신의 영지인 

[카락 요새]  앞을 지나가던 무슬림 상인 행렬의 

물건들을 모조리 약탈해 버림으로써

 

모처럼의 이루어진 휴전협정이 얼마 못가

다시 깨져버릴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어.

 

 

 

 

 

당연히 이 사실을 보고받은 살라딘은 극대노하여

[보두앵 4세] 에게 르노가 약탈한 물건들을

다시 상인들에게 돌려줄것을 요구했고

 

 

 

 

 

[보두앵 4세] 또한 살라딘의 군대에 대응할만한

전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 속에서 르노가

저지른 약탈사건에 큰 분노를 느끼며

 

그에게 서신을 보내어 약탈품들을 모두 돌려주고

무슬림 상인들에게 사과를 할것을 명령했으나

 

 

 

 

 

르노는 되려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뒷배경에는

국왕의 모후인 [아그네스] 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왕의 지시를 거부했지.

 

 

 

 

 

[보두앵 4세]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찢어죽이고

싶었을 테지만 문둔병으로 인하여 스스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기에 

 

당연히 강경파에 속하는 영주들의 행동들을

일일이 통제할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두앵 4세] 가 약탈 당한

무슬림 상인들에게 사과문과 함께 물건들의

가치 만큼의 금액을 대신 지불함으써

 

살라딘의 분노를 가라 앉히고 휴전을

계속 이어나갈수 있었다는 거야.

 

 

 

 

 

 

 

1183년.

 

인간 말종 [르노 드 샤티옹]  [베두인 족] 의 선원과

함선들을 매수하여 함대를 구성하기 시작했는데

 

르노의 함대는 홍해로 진출하여 해상루트를 

이용 중이던 무슬림 상인들의 배들을

습격하여 막대한 제물들을 얻었고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그는 제대로 미쳐버려 

무슬림들의 성지인 [메카] 를 약탈하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고해.

 

 

 

 

 

 

결국, 출동한 이집트 해군에게 의해 르노의 함대는

대부분이 박살이 난채 간신히 [카락 요새] 로 

되돌아올 수 있었어.

 

그런데 문제는 르노의 [메카 약탈 미수 사건] 이 

온 무슬림 사회를 격분하게 만들어 버렸고

 

 

 

 

 

기독교 국가는 모든 무슬림의 적으로 선포됨과

동시에 수많은 무슬림 남성들이 살라딘의

군대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들었지.

 

 

 

 

 

여론이 워낙 십자군과의 전쟁을 원했기에

내부 안정을 꾀하려던 살라딘은 

 

여론에 떠밀려 어쩔수 없이 십자군 영토에 해군을

보내 공격하고 르노의 본거지인 [카락 요새] 

1년 동안 포위공격 하기도 했지만

 

지지부진 하게 끌어가다 결국 예루살렘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종결되고 말았어.

 

 

 

 

 

 

아이러니 하게도 엄청난 실책을 저지른 르노를 

구원하기 위해 [보두앵 4세] 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카락 요새] 까지 왔으며 

 

직접 살라딘과 대면하여 적절한 합의를 본 후

살라딘의 군대가 철군하게끔 만들었어.

 

 

 

 

 

이때 [보두앵 4세] 는 신하들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살라딘에게 얕보이지 않게하기 위해 말 안장에

몸을 묶은 후 말을 타고 출격했었지.

 

 

 

 

 

르노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이때의 무리한

출격으로 [보두앵 4세] 의 건강이 더욱 심각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는데

 

심지어는 나병균이 눈까지 침투하여 시력조차

상당 부분을 상실한 상태이기까지 했다고해.

 

 

 

 

 

하지만 그러면서도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직 5살 밖에 되지 않았던 자신의 조카

[보두앵 5세] 

 

 

 

 

 

왕위 계승자로 지정해둔 후 유일하게 남은

충성파 신하이자 자신의 어린시절에도

훌륭히 섭정 임무를 수행해 왔던 

 

[레몽 3세] 에게 조카가 성년이 될때까지

섭정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어.

 

 

 

 

 

이 모든 것은 무능하지만 강경파의 지지를 받던

[기 드 뤼지냥] 에게 왕위가 가는 것을 

철저히 막기위한 행동이었지.

 

 

 

 

 

 

 

1184년.

 

[보두앵 4세] 는 자신의 사후, [예루살렘 왕국] 

몰락으로 인도할 인물이 [기 드 뤼지냥] 임을

확신하고 있었다고해.

 

 

 

 

 

그래서 자신의 누이였던 기와 시빌라가 맺은

혼인을 무효로 돌리고 영지를 몰수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왕위계승 문제에 큰 불만이 있었던 기가 한발 빨리 

시빌라와 함께 자신의 영지로 도망침으로써

그의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지.

 

 

 

 

 

 

 

1185년 3월 16일.

 

 

 

    " 선왕(보두앵 4세) 의 왕국은 바로 여기(머리) 그리고 "

             여기(가슴) 에 있습니다. 이 왕국은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할 것입니다.

 

                      - [킹덤 오브 헤븐] 이벨린의 발리앙 -

 

 

 

 

[예루살렘 왕국] 의 모든 백성들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마침내 [보두앵 4세] 가 눈을 감았어.

 

마지막까지 예루살렘의 안위를 걱정하고

어린 조카를 위해 기도 했었으며

 

 

 

 

 

마지막 순간, 충성파와 강경파를 가리지 않고

왕을 따라 왕국을 위해 헌신해온 대부분의

가신들이 왕의 마지막을 지켰다고해.


 

 

그의 나이 불과 24세...

 

 

 


 

 

불치병에 걸린 것도 모자라 사방이 적 투성이었고

내부마저도 권력다툼으로 혼란스러웠음에도 

[예루살렘 왕국] 을 훌륭히 지켜나갔던

 

예루살렘의 위대한 수호자이자 성군이었던

그의 죽음은 기독교인 무슬림을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슬퍼했어.

 

 

 

 

 


 

[보두앵 4세] 의 승하 소식을 들은 살라딘 또한

그날 만큼은 정복 전쟁을 중단한채 사신을

보내어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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