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정보

 

 

 

1. '동방 주'(Eastern Province)를 둘러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대립

 

 

 

남미대륙에는 너네가 잘 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을 댈 때 나일 강과 1,2 순위를 다투는 '아마존 강'이 있지? 근데 대륙의 5시 방향에는, 아마존강에 묻혀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라플라타 강' 이 있어. 참고로 '이과수 폭포'는 이 강의 분지인 이과수 강에 위치해 있다. 이 라플라타 강은 스페인 정복시대부터 외부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는데, 이 유역의 은을 대서양으로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강 하구에는 여러 대도시가 발달해.

 

 

 

위의 지도에서 강 하구 부근을 확대한 그림이야.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가 보이지? 

강 동쪽에 위치한 동방주(Banda Oriental), 지금의 '우루과이' 일대는 강 어귀를 가로지르며 은 무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어. 

 

특히, '몬테비데오'는 아르헨티나를 지배하던 스페인이 브라질을 지배하던 포르투갈에 대항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요새에서 출발한 도시인데, 곧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경쟁하는 상업적 요충지로 성장해. 여기를 영국도 눈독 들이면서 이 지역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이 뺏고 뺏기는 상황이 벌어졌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각각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속해 있던 식민지였는데, 각 나라의 독립 시기가 좀 달라. 아르헨티나는 1816년에 스페인으로부터 'United Province of River Plate'란 이름으로 독립했고, 브라질은 1822년에 '브라질 제국'이 힘 빠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어.

 

이 '동방 주' 라는 곳은 스페인 점령시대의 아르헨티나에 속해 있었는데, 1811년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 라는 지도자가 나타나서 동방 주의 독립을 이끌고 '연방연합'을 만들어서 통치해. 하지만 1816년 브라질 제국이 아르티가스를 패퇴시키고 이 곳을 다시 점령, '시스플라티나 주'로 본국에 합병시켜버려.

 

 

 

(우루과이의 국부, '아르티가스'(Artigas)가 그려져 있는 지폐와 몬테비데오에 있는 그의 동상)

 

 

그러니깐, "동방 주(스페인-아르헨티나 소속) --> 연방연합(독립) --> 시스플라티나 주(포르투갈-브라질 소속) --> 현 우루과이"

 

가 되는 거야.

(시스플라티나 주의 기와 브라질 제국에 속해있던 당시 영토의 모습.)

 

 

(아르헨티나의 전신, 'United Province of River Plate'의 모습)

 

그러다 아까 설명했듯, 1822년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자 이 지역에 있던 33인의 '동방인'은 살살 눈치를 보다가 1825년, 아르헨티나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브라질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게 돼.(아르헨티나는 이 지역을 독립시킴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으니까) 열받은 브라질은 곧바로 아르헨티나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이것이 바로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 의 서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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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덩치만 컸던, 두 약골의 대결

 

 

 

브라질 제국(이하 브라질)은 영토의 면적도 아르헨티나보다 더 컸고, 인구도 더 많았어.(450만 vs. 60만. 시스플라티나 주 = 6만)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둘 다 군대를 모으기는 어려운 사정이었는데..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안되었고 초대 황제에 즉위한 '페드루 1세'는 아직 강력한 힘이 없었거든.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여서 'porteños'라 불렸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주민들 외에는 이 전쟁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 우루과이 인들 또한 대부분은 아르헨티나 편에 속해서 독립을 원했지만 일부는 브라질 편을 들었지.

 

브라질 군대의 주축을 이루던 포르투갈 군인들은 브라질의 독립과 동시에 본국으로 귀국해버렸고..남부 브라질인들을 소집하고 독일과 아일랜드의 용병까지 싹싹 긁어모아 만든 군대의 인원은 대략 1만명, 이 중 우루과이 지역에 투입된 인원은 6천명.

 

아르헨티나가 모은 군대는 800명.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속해있던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심지어 군대를 보내라는 요청을 무시했어.

 

우루과이는 독립의 열망이 있는, 팜파스(남아메리카 저지대 평원) 지역의 주민들을 기병대로 편성할 수 있었어.

 

육군: [브라질 6000명] vs. [아르헨티나 800명 + 우루과이 소수 기병대]

 

 

 

해군 전력에 있어서는 브라질의 경우, 1200명의 용병이 있었고 해군 장교의 1/3은 영국인이었어. 함대의 구성은

 

 

ship of the line(74개 이상 함포) : 1척

 

frigate(44개 함포) : 6척

 

brig(14개 함포) : 18척

 

 

아르헨티나는 열악했는데, 군함이 몇 척 없어서 민간 상선을 군용 함선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이웃나라 칠레에서 군함을 사오기도 했어. 그 구성은

 

 

ship of the line : (종범)

 

frigate(44개 함포) : 1척

 

corvette(28개 함포) : 3척(--> 2척)

 

brig(14개 함포) : 2척

 

 

근데 이 중 칠레에서 사온 함선은 남아메리카 남쪽 Cape Horn을 지나다가 frigate 1척이 침수되어 500명이 목숨을 잃고, corvette 1척은 완전 파손됨요.

 

단지 아르헨티나 해군의 장점이 있다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유한 상인들이 용병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돈이 더 많았다는 거지. 상금을 내걸어서 사기는 더 충천했다고 해.

 

해군: [브라질 군함 25척] vs. [아르헨티나 군함 5척]

 

 

전쟁의 진행양상을 보면,

 

1. 브라질이 라플라타 강 유역에 군대를 증원, 아르헨티나에게 위압감을 심어줘서 조기에 끝내려고 함. --> fail

 

2.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봉쇄해서 도시 거주민들의 사기를 꺾어버림. --> fail

(라플라타 강 유역이 워낙 수심이 얕고 지형지물이 별로 없어 함대를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음.)

 

 

(보다시피 엄청난 퇴적물이 강 하구에 쌓여서 어차피 큰 군함은 입구까지 들어갈 수가 없음.)

 

아르헨티나 해군의 작고 날쌘 함선들은 이를 이용, 브라질 함대를 강 입구까지 유인한 다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항구 봉쇄를 방해했어.

 

게다가 전쟁은 압도적인 군 전력 차에 비해, 브라질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어.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선언을 한 다음, 브라질의 여러 주는 제각기 독립을 선언하며 반란을 일으켜 황제 페드루 1세를 압박했거든. 반면 좀 더 일찍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이런 문제가 적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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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투자잉고 전투' 와 '준칼 해전'

 

 

서로 간만 보고 소규모 전투로 잽만 날리던 이 전쟁의 승부는 각각 육상에서의 대규모 전투 1개와 바다에서의 대규모 해전 1개씩으로 판가름 나게 돼.

 

 

1) 이투자잉고 전투(Battle of Ituzaingo)

 

아르헨티나 육군 사령관 : Carlos María de Alvear (이하 알베르 장군)

 

브라질 육군 사령관 :  Felisberto Caldeira BrantMarquis of Barbacena (이하 발바세나 장군)

 

 

아르헨티나의 '알베르 장군'은 라플라타 강을 건너 몬테비데오에 사령부를 설치했고 브라질 국경을 넘어 작은 마을들을 약탈하기 시작했어. 발바세나 장군을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었지. 기병대의 우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산타 마리아 강 유역 평원에 자리잡은 알베르 장군은 다음날 도착한 발바세나 장군을 맞이했어. 발바세나 장군은 병사들이 지쳐있어 휴식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한 채 아르헨티나 군을 쫓았어.

 

 

 

 '동방 주'의 기병대(사령관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가 발바세나 장군이 이끄는 오른쪽 부대로 하여금 강을 건너도록 유인한다. 보병과 포병이 섞인 부대가 강을 막 건너서 포를 발사할 세팅을 하는 타이밍에 알베르 장군의 기병대가 부대를 급습함.

 

 '훌리안 라구나' 대령이 이끄는 메인 병력은 브라질 군대의 정중앙에 있는 용병부대를 상대하는 동시에, 의용군 무리를 격퇴시킴.

 

 '솔레르' 대령의 세번째 부대는 라구나 대령의 부대와 함께 브라질의 용병부대를 상대함.

 

 

 

 

 

이투자잉고 전투에서의 승리는 브라질의 발바세나 장군의 공략으로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지켜냈다는 전략적인 의미는 있었지만 병력의 손실은 크게 입히지 못했다고 해.

 

 

 

(브라질의 포병 부대를 공격하는 아르헨티나의 기병대와 이투자잉고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동판.)

 

 

2) 준칼 해전(Battle of Juncal)

 

이 전쟁의 가장 큰 전투는 바다에서 이뤄졌어.

 

 

아르헨티나 해군 사령관 : William Brown(이하 브라운)

 

브라질 해군 사령관 : Sena Perreira(이하 페레이라)

 

 

아르헨티나의 해상전력 : 군함 15척, 선원 750명, 함포 69문

 

브라질의 해상전력 : 군함 17척, 선원 750명, 함포 65문

 

 

으잉? 아까는 해군: [브라질 군함 25척] vs. [아르헨티나 군함 5척] 이라며?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상선을 군함으로 더 개조했고, 브라질은 라플라타 강을 따라 아르헨티나의 해상을 봉쇄하느라 함대를

 

 

 

 

이런 식으로 3 부분으로 나뉘어서(D.I,II,III) 해상 병력을 흩뜨려 놓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메인 함대는 Division I을 상대하면 됐고..

 

전력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의 선원들이 더 숙련되어 있었고 브라운 제독은 페레이라에 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함장이었어. 아일랜드 출신의 윌리엄 브라운(아르헨티나식 이름은 '기예르모 브라운')은 영국의 해군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고 아르헨티나의 독립전쟁 때에는 스페인 함대를 무찔렀던 장군이었으니깐..

 

 

또한 아르헨티나의 함포는 브라질의 그것보다 더 정확하고 사정거리도 길었지.

 

해전은 총 이틀에 걸쳐서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서 치뤄졌는데, 이 일대는 바람의 방향이 하루 중에도 수시로 바뀌기로 유명한 곳이야. 하지만 브라질 함대는 이를 전혀 이용하질 못했어.

 

(브라질 함대 - 빨간색 / 아르헨티나 함대 - 파란색)

 

첫째날, 아르헨티나의 브라운 함장은 그의 함대 중 gunboat 6척을 앞으로 내보내서 적의 대형 함선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가해.(왼쪽 그림에서 작은 배들 6척에 앞에 간 거 보이지?) 숙련되지 않은 브라질 선원들은 가뜩이나 얕은 강의 하구에서 대형 함선을 움직이기 힘들었고 일부 함선은 조종키의 말을 듣지 않고 물살에 밀려 아르헨티나 함대 쪽으로 떠내려 가는 일도 생겼어. 때마침 폭풍우가 일어서 양쪽 함선 모두 후퇴.

 

기진맥진한 브라질 해군은 다음날 닻을 내리고 배를 고정시킨 상태로 싸워야 할지, 띄워놓고 선원들이 조종하는 상태로 싸워야 할지 고민을 해. 브라질의 페레이라 함장은 결론을 못 내리고 '상황에 맞춰서 하자.'라는 이도저도 아닌 결정을 하게 되지.

 

둘째날, 바람은 동남쪽에서 불어오고 있었고 브라운 함장은 재빨리 그의 함대로 하여금 바람을 등지도록 배치했어. 그리고는 서서히 브라질 함대에 접근했지.

 

 

그러자 브라질의 페레이라는 어서 닻을 내리고 전투 대형으로 함대를 배치시키라고 명령을 내려. 근데 우왕좌왕~ 배도 말을 안 듣고, 잘 정렬된 아르헨티나 함대는 점점 다가오고..페레이라는 다시 닻을 올리고 배를 움직이라고 지시해.

 

대형군함 세 척은 지시를 잘 따라서 아르헨티나 함대에 접근하지만 나머지 작은 함선들이 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뒤편에 그냥 흩어져 있었어.

 

오른쪽 그림을 보면 대형 선박 3척만 달랑 앞으로 전진해 있는 것 보이지? 아르헨티나 함선으로서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3척에 집중해서 함포사격을 해댔고 여기서 오리엔탈 호에 타고 있던 페레이라 장군을 비롯한 다수의 사상자가 생겨.(부상당한 페레이라 장군은 아르헨티나의 포로가 됨.)

 

 

뭐..멋있게 윌리엄 브라운을 이순신 장군 못지 않은 명장이라고 추켜세워주고 싶지만..이건 뭐 그냥 브라질 해군이 병신이었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아무튼 이 해전에서 살아남아 도망간 브라질의 함선은 단 두 척이야.(Vitoria de Colonia, Dona Paula. 나머지 12척의 배는 나포되고 3척은 불태워짐.)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단 한 척의 함선도 잃지 않았어. 이 해전 한 방으로 브라질 함대의 1/3이 궤멸된 거지. 승전보를 갖고 돌아오는 윌리엄 브라운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축포와 오케스트라로 환영했다고 해. 오늘날 그는 '아르헨티나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아.

 

 

(준칼 해전의 승전을 기념하는 메달과 승장 윌리엄 브라운의 이름을 딴 아르헨티나의 구축함, ARA Almirante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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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브라질의 패배와 우루과이의 탄생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의 본토까지 점령할 기세가 되자, 이 유역에 관심이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중재에 나서게 돼. 어느 한쪽의 세력이 훨씬 더 커지는 것은 남아메리카에서의 은 무역을 골치 아프게 할 거거든. 마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도 계속되는 전쟁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고..리우데자네이루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1828년 몬테비데오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핵심 내용은 신생 독립국, '우루과이 동방 공화국'(Republica Oriental del Uruguay)의 탄생이야.

 

 

(자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우루과이는 독립국가의 국기에 아르헨티나 국기에 있는 '5월의 태양'을 모양만 약간 변형해서 사용해. 이 문양은 잉카 신화의 태양신 '인티'를 나타내며, 5월은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810년 5월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이후로도 영원한 우방국으로 지내고 있어.

 

 

 

 

(2030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하겠다고 나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국가 간의 우정?)

 

 

브라질은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시스플라티나 주를 독립국가로 잃었고 전쟁의 사상자로 인한 인구 부족에 시달리게 되며 황제인 페드루 1세는 국민의 지지를 잃고 1831년 퇴위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그들의 역사에서 이 전쟁을 아주 크게 기록하고 전쟁영웅들을 기념하고 있어.(아르헨티나에서 윌리엄 브라운은 '라플라타 강의 넬슨'으로 불리고 우루과이는 이투자잉고 전투에서 '동방 주'의 기병대를 이끈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의 이름을 딴 '라바예하 주'를 만듬.) 반면 브라질에서는 이 전쟁에 대해서 거의 기록이 없고 배우지도 않지.

 

 

(라바예하와 우루과이의 라바예하 주. 라바예하는 나중에 우루과이 대통령도 지낸다. 참고로 우루과이는 현재 남미 최고의 경제력을 지님. - 1인당 GDP 46위. 브라질은 55위, 아르헨티나 6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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