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정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에 사는 유대인과 아랍인은 원래 셈족계열로 비슷한 조상에 비슷한

 

신화랑 비슷한 종교를 가지고 사는인종이었는데 워낙 그쪽지방이 핫한 동네라,

 

다윗-솔로몬 리즈시절 빼곤 그 동네 깡패들이 씹고뜯고 맛보고 즐기는동네가

 

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방이다.

 

요 땅이 교통의 요지인지라 이집트-이스라엘-시리아로 이어지는 땅이 사막을 지나가는 대상들 빼고는 그나마 사람 살기 좋은 땅으로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알렉산더 셀레우코스 로마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강자들이 이 땅을 차지했다.

 

근데 이 유대인들이 워낙 별종이라, 다른 인종들은 문화적 차이가 있었어도 대부분 다신교를 믿는 종족이라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이 일신교 믿는 별종들은 주제파악도 못하고 그 강력한 제국에 맨날 바득바득 개겼던 것이다.

 

그래서 앗시리아나 바빌론처럼 쓸어다가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나기도 하고 페르시아의 관대한 키루스대제때처럼 다시 고향에서 살기도하고 셀레우코스 밑에서는 마카베오라는 지도자의 지휘하에 독립시기도 가져보고비교적 관대한 로마 밑에서는 계속 반란도 일으키고 했었지.

 

그러나 로마 성님은 자꾸 반란 일으키는 이 유대인들이 짜증나기만 했고 결국 열받은

 

로마는 서기 73년에 마사다요새의 항전을 끝으로 유대인을 철저히 탄압하고 전부 강제 이주를 시켜버렸다.

 

당시 로마군 사령관 티투스

 

그럼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은 어케 되었나? 로마 내부로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같이 살던 라틴 게르만 슬라브랑 점차 동화되어서 살거나 아니면 거기서도 독하게 유대인임을 지키며 살았고, 또는 사막의 동방쪽으로 흩어져서 아랍인들과 부대끼며 살거나 심지어는 에티오피아나 중국 일본 우리나라까지 와서도 살게되었다.

 

유럽쪽에 살던 유대인을 아슈케나짐이라고 하는데, 이제부터는 아슈케나짐만 이야기한다.

 

 

이 동화된 유대인들은 상관없지만, 독하게 유대인을 지키는 애들은 현재 이슬람이 유럽에서 취급받는거 비슷하게 엄청나게 박해받았다.

 

왜냐면 유럽의 보편 종교인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자면 메시아인 예수를 거부하고, 메시아만 기다리는 이 별종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박아 죽인 범죄자로 봤기때문이지.

 

따라서 대부분의 카톨릭 교도들은 심심하면 유대인 구타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같이 살지도 않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둔것처럼 따로 게토란 거주지에 두어서 섞여살기조차 거부했지.

 

결국 농사도 못짓게하고, 같이 살기도 거부한 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직업이라고는 돈이 돈을 낳는 고리대금업밖에 없었음.

 

서론이 조금 긴 것 같았는데 유대인은 거의 1500년정도 미움받으며 유럽애들이랑 부대끼며 살았다.

 

하여간 1500년 동안 딴동네 살면서 그렇게 독한녀석들은 유대인이나 집시 밖에 없을거다.

 

 

일의 시작은 1894년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바로 이 사람 드레퓌스 대위에게서 부터지. 1800년대 후반 잘나간던 프랑스는 옆나라 독일이 통일을 이룩하면서 프랑스-독일전쟁에서 한판 크게 깨지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결국 독일에 대한 악감정이 얼마 안남은 상태서 독일에 포섭된 한 스파이가 보낸 편지를잡아냈는데,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드레퓌스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아프리카로 보내버리지. 모든 증거가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이 사람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쓴건 이 사람이 유대인 이라서 그런거다 심지어 드레퓌스가 유대교 믿고 그런것도 아니고 걍 평범한 프랑스 사람인데도 혈통만 유대인인 것때문에 유죄를 받았던 거지.

 

결국 거의 모든 유럽의 유대인들은 충격과 공포를 먹었는데, 그중에 한사람이 크게 깨달음을 얻었으니 헝가리 출신 테오도르 헤르츨이란 기자였음.

 

 

시발 자유 평등 박애 인권 어쩌고 하면서 프랑스 혁명의 나라이자 모든 억압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자유의 나라 프랑스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드레퓌스를 아프리카로 보내는 걸 보면서 이 헤르츨은 깊은 좌절감을 느끼다 결국 깨달음을 얻었지.

 

유럽 떠나서 옛날 우리 선조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 라고 시오니즘을 주창하게 된다.

 

시온이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이름인데, 하여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는 헤르츨의 외침은 처음에는 쟤 뭐야 했지만 드레퓌스와 비슷한 처지였던 동유럽쪽 유대인들에게서는 "새로운 메시아가 나타났다."라면서 따르거나 했다지.

 

그나마 헤르츨은 처음에는 온건한 방법을 택했다. 바로 돈 많은 유대인들의 투자이민을 적극 유치한거다.

지금은 중동지방이 걸레짝마냥 쫙쫙 갈라져있지만 그때 당시 중동지방의 패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다.

 

물론 영국 프랑스가 최강국에 이집트니 아라비아니 삥뜯는 호구였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유대인들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였다.

 

결국 이스라엘 지방쪽에 땅을 조금 조금 사서 가족단위로 이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럼 아랍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처음에는 하나 둘 이사오니, 불쌍해보여서 사이좋게 지내고 도움도 많이주고 가족처럼 지내는 아랍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제 1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악화되기 시작한거임.

 

 

당시에 세계 패권국 영국이 바로 오스만 투르크의 아라비아 지방과 거대한 중동지방에 눈독을 들인거지.

 

대영제국 그 커다란 식민지로도 모자란건지 이미 이집트를 뺏어본 전력이 있는 영국은 자꾸 오스만 투르크한테 찝적거림. 결과는? 제1 차 세계대전 터지고, 오스만 투르크는 그 거대한 영토 영국이랑 프랑스한테 삥뜯긴다.

 

문제는 영국이 터키계열 애들한테 억압받던 아랍인들에게 호감 사려고 1915년 '아랍에는 아랍인들을 위한 국가를 세워줄거임'이라는 맥마흔 선언을 한다.

 

그리고나서 전쟁이 질질 끌려가자, 돈많은 미국계 유대인 & 유럽에 있는 돈 좀 만지는 유대인들에게 호감 좀 사보려고 1917년 '중동에 유대인 국가 세워줄게'란 벨푸어 선언을 한다.

 

생각을 해보면 중동에는 아랍인들을 위한 국가 세워줄건데 유대인 국가도 꼽사리끼워서 세운다고?

 

물론 둘 다 바보같은 영국의 선언에 욕하면서 이를 갈았지만 어찌되었건, 제1 차 세계대전은 영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고, 중동의 거대한 오스만 투르크 영토는 터키쪽만 겨우 건지고 나머지는 전부 영국이랑 프랑스가 갈라먹었다.

 

프랑스쪽 식민지가 나중에 시리아니 레바논이니로 독립해 떨어져 나갔고, 영국쪽은 사우디랑 요르단 그리고 현재 문제되는 팔레스타인이 먹었다. 여기서 영국이 통수를 후려갈겼지.

 

전쟁 끝나고나니 유대인들 국가 세워줄 맘이 싹 사라졌거든, 당장 숫적으로도 훨씬 많은 아랍인들에게 잘보여야지 유대인쯤은 하고 무시하고 넘겼고, 실제로 돈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이 가진 기반&재산 다 날리고, 팔레스타인으로 가겠니?

 

결국 이 싸움의 불씨만 영국이 남기고, 영국은 중동의 석유랑 각종 자원들을 쪽쪽 빨아먹었다.

 

그래도 시오니즘의 투자 이민은 성공적이었는지, 1930년대 인종 구성분포를 보면 아랍인 60만에 유대인 10만정도 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아랍인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었고, 그때부터 지금처럼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영국 뒤에 숨은 아랍인들이 유대인들 집단 린치하고, 집 불태워 버리고, 죽이고 그랬었다.

근데 그게 너무 막나가다보니 영국에게서 독립하겠다!라는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영국은 이 것들이 막나가네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아랍인 뒤통수치고 유대인과 손잡았다.

 

영국이 대준 무기로 무장한 유대인들은 강력한 무장단체를 만들어 아랍인들 학살하고 다녔다.

 

이 단체를 아그니라고 불렀는데, 훗날 건국하게 되는 이스라엘 독립에는 이 아그니 출신 군인들이 군부에서 큰 활약을 펼치게된다.

 

하여간 유대인들은 이렇게 똘똘뭉쳐서 아랍인들 학살하고 다녔지만 아랍인들은 영국과 유대인들의 진압에 지도자도 잃고 내부의 분열로 결국 1939년되면 중동쪽 패권은 거의 유대인들에게 넘어가게된다.

 

그런데 이 시기 유럽에 두번째 큰 전쟁이 터지게 됨. 바로 제 2차 세계대전이지.

 

 

이 지방 사람들은 이 거대한 전쟁에서 줄타기를 감행했다. 유대인들은 영국 뒤에 숨는 걸 택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나치 독일에 협력하기로 했지.

 

결국 롬멜이 처들어온 북아프리카 지방의 전황이 급박해지자,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영국은 만여명에 가까운 유대인 병력을 끌어모아 이집트에 배치시켰다.

 

얘네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이 가지?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은 나치 독일한테서 뭘 받았으려나? 하여간 제 2차 세계대전도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영국은 이제 당장 국가가 망하기 일보직전이었음. 그래서 빨리 이 중동에서 손떼고 나가고 싶었지.

 

그러나 다른 지방은 다 독립시켜도 큰 문제가 없이 아랍인들이 국가를 만들고 굴리기 시작했는데, 이 지방은 도무지 답이 안나오는 거였다. 영국군이 철수하는 즉시 팔레스타인인이건 유대인이건 총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일어날게 뻔해보였거든.

 

그러다가 점차 나치 독일 밑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점차 유럽과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국제여론이 유대인들에게 동정적으로 돌아갔고, 수많은 시오니즘 추종자들은 이 흐름을 타고 이스라엘 건국에 박차를 가한다. 그런데, 이 지방을 잡고있는 영국은 유대인에게 이 땅을 줄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당시 독립한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유대인들을 씹어먹을 종자로 취급했고, 괜히 걔네들 심기 건드려서 석유 수급 어려우면 짜증나니까, 결국 영국은 10만에 달하는 군대를 새로 파견했고, 이번에도 영국 통수가 작렬해서 영국군이 방관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인들 학살하고 다녔다.

 

UN이 어떻게든 중재를 나서보려했지만, 영국은 요지부동이었고, 강력한 영국함대를 동원해서 지중해를 막고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걸 중간에 막거나 심지어는 격침까지 시켜버릴정도로 단호하게 대처했음.

 

그러나 이미 대세는 유대인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특히 영국보다 강력한 미국이 나서기 시작하면서 얘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스 트루먼 이 사람도 어지간히 꼴통인데, 하여간 미국 뒤에 숨은 유대인들은 각종 로비와

여론몰이 선동에 나섰고, 점차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1947년 UN이 나서서 결의안을 만들어 낸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 각각의 나라를 세워주고 워낙 분쟁이 심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UN이 관리하겠다라고 나선거지.

 

 

두번째 그림 보면 유대인들은 아주 그냥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물론 남쪽에 커다란 지방은 대부분 사막이었지만, 드디어 국제공인을 받은 유대인 국가가 탄생하려고 했으니, 그동안 설움이 다 날라가면서 눈물을 줄줄흘리고 있었다.

 

근데 팔레스타인인들은 이게 또 뭐 같은지라 UN결의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뭘하건 자시건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중동전쟁이 펼쳐지면서 유대인들은 아주 기고 만장해졌고, 지금의 사태까지 이른 거다.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인이나 서로 학살해댄건 마찬가지이고, 그 역사가 수백년가까이 되다보니 이제는 평화적 해결?

아마 예수가 그 지방에 다시 살아돌아와서 물위를 걷는다해도 불가능할거다.

 

 

3줄 요약

 

1. 유대인들 핍박을 수천년간 받음.

 

2. 그 와중에 이스라엘 지방에 눈독들임.

 

3. 영국 뒤통수 극복하고 이스라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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